파이브 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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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이브 포 파이팅은 싱어송라이터 존 온드라식의 음악 프로젝트명이다. 196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온드라식은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을 시작, UCLA에서 응용과학 및 응용수학 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에 파이브 포 파이팅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1997년 데뷔 앨범 ''Message for Albert''를 발매했다. 2000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America Town''은 "Easy Tonight"과 "Superman (It's Not Easy)"의 성공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The Battle for Everything''(2004), ''Two Lights''(2006), ''Slice''(2009), ''Bookmarks''(2013) 등 여러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2020년대에는 사회적, 정치적 사건에 관한 노래들을 발표하며 음악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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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포 파이팅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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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출생 이름 | 블라디미르 존 온드라시크 3세 |
별칭 | 존 온드라시크 |
출생일 | 1965년 1월 7일 |
출생지 |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미국 |
학력 |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이학사) |
직업 | 싱어송라이터 피아니스트 음반 프로듀서 자선가 |
악기 | 보컬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
활동 기간 | 1988년 – 현재 |
레이블 | 윈드-업 레코드 어웨어 레코드 컬럼비아 레코드 네트워크 EMI |
현재 멤버 | 존 스콧 |
자녀 | 2명 |
웹사이트 | fiveforfighting.com |
음악 스타일 | |
장르 | 소프트 록 하트랜드 록 얼터너티브 록 팝 록 아메리카나 어덜트 컨템포러리 |
관련 인물 | |
관련 인물 | 그레그 와텐버그 |
2. 초기 생애 및 경력
존 온드라식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랐다. 슬로바키아계 혈통으로, 그의 어머니는 그라나다힐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존 F. 케네디 고등학교에서 피아노 교사로 재직했다.[14]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고, 십 대 시절에는 기타를 배우고 작곡을 시작했다. 론 앤더슨에게 오페라를 배웠지만, 곧 싱어송라이터가 되기로 결심했다.[15] UCLA에서 응용과학 및 응용수학 학위를 받았다.[16]
''파이브 포 파이팅''이라는 프로젝트명은 아이스하키에서 파울을 범한 선수가 5분간 페널티를 받는다는 규칙에서 유래했다. 온드라식은 NHL의 로스앤젤레스 킹스 팬이다.
2. 1. 초기 생애 (1965-1988)
존 온드라식은 1965년 1월 7일 로스앤젤레스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132] 그는 슬로바키아계 혈통이다.[14] 그의 어머니는 그라나다힐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존 F. 케네디 고등학교에서 피아노 교사로 재직했다.[14]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고, 십 대 시절에는 기타를 배우고 작곡을 시작했다. 론 앤더슨에게 오페라를 배웠지만, 곧 싱어송라이터가 되기로 결심했다.[15] UCLA에서 응용과학 및 응용수학 학위를 받았다.[16]2. 2. 초기 음악 경력 (1988-1995)
1988년 UCLA를 졸업한 후, 존 온드라식은 글램 메탈계와 연관을 맺었다. 그는 화이트스네이크의 베이시스트 루디 사르조[17]와 친분을 맺었고, 팻 베네타와 함께 작업한 스콧 세인트 클레어 시츠와 '존 스콧'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온드라식은 밴드의 장르를 "팝 메탈"이라고 묘사하며 본 조비와 비슷한 사운드를 가졌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 너바나의 등장과 그런지 열풍으로 인해 밴드는 해체되었다.[15]시츠와 온드라식이 함께 작곡한 존 스콧의 노래 3곡("After the Fire", "Shadow of Myself", "Turn the Wheel")은 1997년 시츠의 밴드인 세인트 클레어의 아레나 록[19] 앨범에 수록되었다.[20][21] 존 스콧 해체 후, 온드라식은 "나는 있어야 할 곳인 피아노로 돌아갔다"라고 회상한다.[23]
1990년대 초, 온드라식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며 EMI 음악 출판사의 카를라 베르코위츠[24]와 계약을 맺었고, 이후 둘은 결혼했다.[25] 1995년, EMI 레코드와 계약한 그는 아이스하키 용어인 '파이브 포 파이팅'을 밴드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26][27]
2. 3. "파이브 포 파이팅" 결성 및 첫 앨범 (1995-1999)
1995년, 존 온드라식은 EMI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EMI 임원들의 요청으로 "파이브 포 파이팅"을 밴드 이름으로 채택했다.[26][27] 이는 온드라식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렵고, 1990년대 중반 남성 싱어송라이터가 "죽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28][29] "파이브 포 파이팅"은 아이스하키에서 싸움에 대한 5분간의 페널티를 의미한다. 온드라식은 로스앤젤레스 킹스의 열렬한 팬이다.[30]파이브 포 파이팅의 첫 앨범 ''Message for Albert''는 1997년 3월 EMI에서 발매되었다.[33] 그러나 EMI 레코드의 미국 지사는 그해 6월에 문을 닫았다.[31] 앨범은 발매되었지만 싱글은 나오지 않았다. "Bella's Birthday Cake"가 리드 싱글로, "Ocean"은 두 번째 싱글로 고려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32]
올뮤직은 ''Message for Albert''를 "지적이고 잘 만들어진" 앨범이라 칭하며, "EMI의 갑작스러운 해체로 기회를 잃은 유망한 데뷔 앨범"이라고 평가했다.[33]
EMI 미국 지부가 해체된 후, 온드라식은 ''Message for Albert''를 캐피톨 레코드 또는 버진 레코드를 통해 재발매하려 했으나 실패했다.[25] 파이브 포 파이팅은 EMI를 떠났고, 2000년 앨범 ''America Town''에 "Easy Tonight"과 "Jainy"를 다시 녹음했다.[34] 캐피톨 레코드는 ''America Town''의 성공 이후 ''Message for Albert''를 재발매했다.
3. 전성기 및 상업적 성공 (2000-2006)
콜롬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와 계약한 파이브 포 파이팅은 2000년 9월 26일 ''America Town''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싱글 "Superman (It's Not Easy)"가 9.11 테러 이후 추모곡으로 사용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America Town''은 빌보드 200 차트 50위권에는 진입하지 못했지만,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38][39]
2004년 2월에는 세 번째 정규 앨범 ''The Battle for Everything''이 발매되어 빌보드 200 차트 20위에 올랐다. 싱글 "100 Years"는 빌보드 성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49] 이 앨범은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49]
2006년에는 앨범 ''투 라이츠(Two Lights)''가 발매되어 빌보드 200 차트 8위에 올랐다. 첫 싱글 "수수께끼(The Riddle)"는 빌보드 핫 100 차트 40위에 올랐고, 두 번째 싱글 "월드(World)"의 뮤직비디오는 여러 자선 단체에서 사용되었다.
3. 1. ''America Town''과 "Superman"의 성공 (2000-2003)
2000년, 파이브 포 파이팅은 Aware Records와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했다.[35] 같은 해 9월 26일, 두 번째 앨범 ''America Town''을 발매했다. 앨범에는 10개의 신곡 외에도, 이전 앨범 ''Message for Albert''에 수록되었던 "The Last Great American"과 "Love Song"이 재녹음되어 포함되었다. 첫 싱글 "Easy Tonight"은 Adult Top 40에서 26위에 올랐다.[36]두 번째 싱글 "Superman (It's Not Easy)"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4위, Adult Top 40에서 1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곡은 9.11 테러 이후 추모곡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존 온드라식은 2001년 10월 20일, 뉴욕시를 위한 콘서트에서 이 곡을 공연했다. "Superman"은 2002년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37]
이후, "America Town"과 "Something About You"가 각각 2002년과 2003년에 싱글로 발매되었지만, 두 곡 모두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다. ''America Town''은 빌보드 200 차트에서 50위 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2004년에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38][39]
연도 | 곡명 | 빌보드 핫 100 | U.S. Adult Top 40 | 성인 컨템포러리 차트 | 앨범 |
---|---|---|---|---|---|
2001 | "Superman (It's Not Easy)" | 14 | 3 | 2 | America Town |
2002 | "Easy Tonight" | - | 18 | - | America Town |
2002 | "America Town" | 108 | - | - | America Town |
3. 2. ''The Battle for Everything'' (2004-2006)
2004년 2월, 파이브 포 파이팅의 세 번째 정규 앨범 ''The Battle for Everything''이 발매되어 빌보드 200 차트에서 20위로 데뷔했다.[49] 이 앨범에는 싱글 "100 Years"가 수록되었으며, 이 곡은 빌보드 성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49] "Devil in the Wishing Well"은 앨범의 두 번째 싱글로, Adult Top 40에서 23위에 올랐다. ''The Battle for Everything''은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49]4. 지속적인 성공과 활동 (2006-현재)
2006년 앨범 ''Two Lights'' 발매 이후 존 온드라식은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2009년에는 스티븐 슈워츠와 공동 작곡한 곡들이 포함된 5집 앨범 ''Slice''를 발매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업적 성공은 다소 주춤했지만, 그는 텔레비전 및 영화 음악 작업과 더불어 지정학적 사건에 대한 노래를 발표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2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를 비판하는 노래 "Blood on My Hands"를 발표하여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65]
2022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노래 "Can One Man Save the World?"를 발표하고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66] 그는 푸틴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강인함을 직접 목격했다고 밝혔다.[67]
2024년에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반유대주의에 대응하는 노래 "OK"를 발표했다.[68]
4. 1. ''Two Lights''와 ''Slice'' (2006-2009)
2년 후, 앨범 ''투 라이츠''(Two Lights)''가 발매되었고, 이는 2006년 8월 ''빌보드 200'' 차트에서 8위로 데뷔하며 그의 첫 번째 톱 10 앨범이 되었다.[4] 첫 번째 싱글 "수수께끼"(The Riddle)는 온드라식의 세 번째 톱 40 히트곡이 되어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40위까지 올랐다. 이 곡은 AC 차트에서 3위, 핫 AC 차트에서 7위에 올랐다.[4] 두 번째 싱글 "월드"(World)는 핫 AC 차트에서 14위에 올랐으며, 뮤직 비디오는 다양한 자선 단체를 위한 기금 모금과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의 국제 우주 정거장 테마로 사용되었다.[4]다섯 번째 정규 앨범인 ''슬라이스''(Slice)''는 2009년 10월 13일에 발매되었으며, 발매 첫날 아이튠즈 앨범 톱 10에 올랐다. 이 앨범은 "슈퍼맨", "100년"의 프로듀서인 그레그 와텐버그가 프로듀싱했다. 위키드, 갓스펠, 피핀과 같은 뮤지컬의 노래를 작곡한 아카데미상 수상 작곡가 스티븐 슈워츠는 타이틀 곡과 "어보브 더 팀벌라인"(Above the Timberline) 곡을 공동 작곡했다. 2009년 7월 21일, 슬라이스의 첫 번째 싱글인 "찬스"(Chances)가 디지털 다운로드로 발매되었다. "찬스"는 히트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의 엔딩 크레딧에 삽입되었다. "찬스"는 핫 AC 라디오 차트에서 11위에 올랐다.[4]
4. 2. 활동 침체 및 새로운 음반사 (2010-2013)
2010년대 초, 파이브 포 파이팅의 상업적 성공은 주춤했다. 2010년, 콜롬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와 결별했다. 2013년, 윈드업 레코드를 통해 여섯 번째 앨범 ''Bookmarks''를 발매했다. "What If"는 이 앨범의 리드 싱글로, 어덜트 톱 40과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각각 29위와 28위에 올랐다.[82]4. 3. 활동 영역 변화 (2014-2020)
2010년대 중반부터 존 온드라식은 텔레비전 및 영화 음악 작업에 집중했다. CBS 드라마 ''코드 블랙''에 여러 곡을 제공했다. 영화 ''고스넬: 미국 최대의 연쇄 살인범의 재판''의 엔딩 크레딧 곡 "Song For The Innocents"를 녹음했다.4. 4. 최근 활동 (2021-현재)
2020년대에 온드라식은 현재의 지정학적 사건에 관한 세 곡의 노래를 발표했다. 첫 번째 곡은 2021년에 발표한 "Blood on My Hands"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노래는 유튜브가 선정적인 뮤직 비디오를 삭제했다가 다시 복원하면서 음악 검열에 대한 미디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65]2022년 3월, 온드라식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Can One Man Save the World?"를 발표했으며,[66] 2022년 7월 9일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 곡을 연주했다. 온드라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우크라이나 오케스트라와 함께 파괴된 안토노프 공항에서, 러시아가 전쟁 초기에 파괴한 세계 최대의 화물기인 우크라이나인들이 사랑하는 므리야 앞에서 저의 새로운 우크라이나 찬가 "Can One Man Save the World?"를 연주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성한 장소에서 이 음악적 협업을 공유하면서, 저는 바이올린을 켜든 탱크를 몰든, 푸틴의 잔혹 행위와 침략에 굴하지 않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강인함과 우아함을 직접 목격했습니다.[67]
2024년 1월 18일, 온드라식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그에 따른 전 세계적인 반유대주의 증가에 대응하여 "OK"를 발표했다. 그는 이 노래를 "선과 악, 옳고 그름을 옹호하고 '맥락'이나 모호함 없이 악을 지목하는 행동 촉구"라고 언급했다.[68]
5. 음악 스타일 및 영향
올뮤직(AllMusic)은 파이브 포 파이팅의 성공에 대해 온드라식을 "현대 팝 음악의 가장 끈기 있는 발라드 가수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84] 파이브 포 파이팅은 ''America Town''과 ''The Battle for Everything'' 두 앨범이 플래티넘 판매고를 올렸으며, 그래미 상 후보에 한 번, AMA 후보에 한 번 지명되었다.
연도 | 시상 기관 | 후보/작품 | 상 | 결과 |
---|---|---|---|---|
2002년 | 그래미 상 | "슈퍼맨 (잇츠 낫 이지)" | 보컬 듀오 또는 그룹의 최고 팝 퍼포먼스[37] | 후보 지명 |
2003년 | 아메리카 뮤직 어워드 | 파이브 포 파이팅 | 가장 좋아하는 성인 컨템포러리 아티스트[85] | 후보 지명 |
6. 자선 활동
2007년 봄, 온드라식은 첫 번째 비디오 자선 웹사이트인 whatkindofworlddoyouwant.com을 개설했다.[95][86] 이 웹사이트는 팬들이 "당신은 어떤 세상을 원하십니까?"라는 질문(그의 히트곡 "World"에서 따옴)에 대한 비디오를 업로드할 수 있게 했다. 이 사이트는 오기 퀘스트(Augie's Quest), 자폐증 치료를 위한 희망(Autism Speaks),[87] 피셔 하우스 재단(Fisher House Foundation),[88]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89] 및 오퍼레이션 홈프론트(Operation Homefront)를 위해 25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다.[88]
온드라식은 미국 USO(United Service Organizations, USO)의 후원하에 2007년 2월과 3월에 관타나모 만과 쿠바의 다른 기지에서 USO/군대 엔터테인먼트 투어의 일환으로 군인들을 위해 공연했다. 그는 2007년 11월에 일본, 괌, 하와이를 방문하는 또 다른 USO 투어를 이어갔다. 온드라식은 "나는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우리 삶의 방식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고, 나의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2007년 11월, 온드라식은 미국 군인들을 위한 13곡의 무료 노래를 담은 ''군인을 위한 CD''(CD for the Troops)의 발매를 조정했다. 군인을 위한 CD는 5개였으며 100만 장 이상이 배포되었다. 기증된 노래에는 빌리 조엘(Billy Joel), 주얼(Jewel), 세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의 곡이 포함되었다. 이후 볼륨은 2008년(그레천 윌슨(Gretchen Wilson), 키스 어반(Keith Urban), 트레이스 애킨스(Trace Adkins)의 노래 포함), 2009년(크리스 록(Chris Rock), 레이 로마노(Ray Romano), 아담 샌들러(Adam Sandler)와 같은 코미디언의 자료를 담은 코미디 트랙 앨범), 2010년(매치박스 20(Matchbox 20), 브랜디 칼라일(Brandi Carlile), 잉그리드 미셸슨(Ingrid Michaelson), 개빈 드그로(Gavin DeGraw)의 노래 수록), 2011년(세라 바렐리스(Sara Bareilles), 메이데이 퍼레이드(Mayday Parade), REO 스피드웨건(REO Speedwagon)을 포함한 아티스트)에 발매되었다.
온드라식은 또한 연례 ''제리 루이스 MDA 노동절 텔레톤(The Jerry Lewis MDA Labor Day Telethon)''에 출연했으며 근이영양증 협회(Muscular Dystrophy Association)와 오기 퀘스트를 위한 다양한 행사를 열어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 루게릭병)에 대한 인식과 기금을 모금했다.[90]
2008년, 그는 로커큐멘터리(rockumentary) ''콜 + 리스폰스(Call + Response)''를 위해 "World"의 라이브 버전을 공연하여 현재의 노예 제도와 인신 매매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음악 운동에 참여했다.[91]
"What If"라는 곡은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의 비영리 단체인 버진 유나이트(Virgin Unite)의 10주년 기념 캠페인에 사용되었다.[92]
이 가수는 전국 아버지 주도(National Fatherhood Initiative)의 2009년 군인 아버지상 시상식에서 특별 아버지상을 받았다.[93] 그는 2016년 국제 SPA 협회의 인도주의상을 수상했다.[94]
2022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참여한 미국인들을 인터뷰하는 다큐 시리즈 Meet the Heroes를 시작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는 마이클 왈츠(Michael Waltz)가 출연했다.[95]
2022년 2월 온드라식은 톰 모렐로(Tom Morello), 빅토리아 윌리엄스(Victoria Williams), 베스 하트(Beth Hart) 등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통받는 아프간 소녀들에 대한 노래 "God Help Us Now"에 참여했다.[96]
2024년 5월, UCLA 학생들은 이스라엘에 항의하기 위해 야영을 시작했다. 경찰이 폭력적인 폭도들이 UCLA 학생들을 공격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97], 이후 법을 준수하지 않은 200명 이상의 학생들을 체포한 지 며칠 후,[98] 온드라식은 UCLA Hillel에서 열린 미국 유대인 위원회 기자 회견에 참석했다. 그는 성명에서[99] UCLA 교수진과 행정부에 "야만적인 테러 단체"가 캠퍼스에서 무슬림을 공격할 경우 그들을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일련의 가상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전국 유대인 학생들에게 공감하며 "이 열광에 유혹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 학교 [UCLA]의 관리자와 총장에게 버려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가상 질문을 하는 동안 UCLA 친 팔레스타인 야영지에서 유대인 학생을 차별하는 수많은 활동이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했으며, 학교 건물에 접근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신앙을 묻는 것 등을 포함했다.
7. 사생활
온드라식의 출생 연도에 관해서는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Encyclopedia.com에는 그의 출생 연도가 1965년이 아닌 1968년으로 기재되었다.[78] 2001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사에서는 그를 36세가 아닌 33세로 언급했다.[100] 2002년 3월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와의 인터뷰에서는 그의 나이를 37세가 아닌 33세라고 밝혔다.[101] 그러나 온드라식은 2020년에 자신이 55세가 되었다고 언급하며 1965년생임을 시사했다.[102]
8. 음반 목록
파이브 포 파이팅은 1997년 EMI에서 4인조 밴드로 첫 앨범 ''Message for Albert''를 발매했다. 이후 밴드는 해산되었고, 존 온드라지크의 솔로 프로젝트 형태로 남게 되었다. 2000년 콜롬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와 계약 후 발매한 ''America Town'' 앨범은 싱글 「Superman (It's Not Easy)」가 9.11 테러 이후 인기를 얻으며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2004년 세 번째 앨범 ''The Battle for Everything''은 빌보드 20위를 기록했고, 2009년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2006년 앨범 ''Two Lights''는 빌보드 8위로 톱 10에 진입했으며, 싱글 「The Riddle」은 빌보드 40위를 기록했다. 2009년에는 그레그 와텐버그가 프로듀싱한 다섯 번째 앨범 ''Slice''가 발매되었다.